압제의 악순환을 끊으신 예수님
-인권의 기초는 어디에 있는가
책의 핵심 문장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에 모든 개인은 독특하며 가치와 존엄성을 지닌다.
하나님의 형상에는 등급이 없다.
흰건반과 검은건반이 키보드에 다 중요하듯이
백인과 흑인도 하나님께 다 중요하다.
하나님의 형상에는 등급이 없다.
흰건반과 검은건반이 키보드에 다 중요하듯이
백인과 흑인도 하나님께 다 중요하다.
— 창세기 1:26-27 기반
핵심 통찰
인권은 다수결이나 사법부의 결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강요된 인권에는 힘이 없다.
인권이 진정한 힘을 가지려면 그것이 “엄연히” 존재해야 한다.
팀 켈러는 인권 개념의 가장 탄탄한 기초가 성경에 있다고 말한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인종 차별에 맞서 싸운 것도 실용적 공익이 아닌 성경의 정의
— 아모스 5장 24절 —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위에 세운 것이었다.
팀 켈러는 인권 개념의 가장 탄탄한 기초가 성경에 있다고 말한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인종 차별에 맞서 싸운 것도 실용적 공익이 아닌 성경의 정의
— 아모스 5장 24절 —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위에 세운 것이었다.
압제의 악순환과 복음의 해답
악순환의 문제 — 압제받던 사람이 나중에 압제자로 변한다. 힘을 얻으면 같은 방식으로 남을 지배하려 한다
세속적 해결의 한계 — 롤스의 사회 정의론은 킹 박사의 기독교적 기초 앞에서 무색해진다
복음의 해결 — 구원의 이야기를 믿으면 압제받던 사람이 압제자로 변하는 악순환도 끊어진다
십자가의 결정적 사건 — 십자가야말로 압제의 악순환을 결정적으로 끊은 사건이다
압제의 악순환을 끊으신 예수님
그분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셨고 버림받은 소외층과 어울려 사셨다.
재판에서 오심을 받고 빈털터리로 비명에 죽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불의의 희생자가 되어
부패한 제도를 감내하며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
그분은 폭력을 폭력으로 갚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신을 대적하는 무리를 위해 죽으셨다.
그 이야기가 당신 삶의 중심이 된다면,
어떻게 그것이 당신을 이끌어 권력을 장악하고
남을 지배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예수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는다는 기독교인이
빈민과 소외층을 위한 구제와 정의의 삶에
헌신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긋나는 삶이다.
결론
신앙은 공중도덕에 초자연적 지원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앙이 전하는 소식은 심히 불편하다.
우리 삶의 형태가 정의와 연민의 공동체로 거듭나려면
철저한 해체를 거쳐야 한다.
성경 이야기는 압제의 도구로 유독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의 성경적 의미를 통해 압제의 악순환 자체를 끊어낸다. 복음을 깨달은 기독교인은 자신도 여태 압제자였음을 인정하며, 그러므로 단호하되 독선 없이 정의를 행한다.
성경 이야기는 압제의 도구로 유독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의 성경적 의미를 통해 압제의 악순환 자체를 끊어낸다. 복음을 깨달은 기독교인은 자신도 여태 압제자였음을 인정하며, 그러므로 단호하되 독선 없이 정의를 행한다.
적용 점검
하나님의 형상에는 등급이 없다.
십자가는 압제의 악순환을 끊었고, 복음은 압제자를 정의의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십자가는 압제의 악순환을 끊었고, 복음은 압제자를 정의의 사람으로 변화시킨다.